고백컨데 나는 슈프림을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그렇게 줄을 서가며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봄) 굳이 저렇게까지?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음.
얼마전 친한 형이 도쿄에 놀러오면서 뭐 딱히 할게 없나 하다가
찾아보니 그때가 딱 슈프림 2023년 봄/여름 신제품들이 드랍(판매개시?정도의 느낌)되는 날이라고 해서 같이 가기로했다.
뭐 딱히 모르겠어서 유튜브를 찾아보니 대강 다음 영상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로 하면 된다고해서 그런줄만 알았다.
(https://youtu.be/YihDKK8j4yM 이 영상의 마지막 쯤 설ㅁㅕㅇ이 나옴)
집이 슈프림 매장 3곳과 모두 가까워서 대강 아침에 나가서 가장 가까운 하라주쿠 지점에 도착해서 보니 ..
줄이 진짜.. 한 200m 쯤 되었다.
대략 500명 가까운 슈프림으로 온몸을 무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존나 이상하고 기묘했음.
가방도 다 슈프림. 모자도 다 슈프림. 춥지도 않은데 노스페이스x슈프림 패딩.. 이상함
다만, 그게 입장 줄 같은게 아니라 그냥 대강 번호표만 받는 줄이라 번호표를 받기까진 대략 10분 정도 걸렸고
그대로 바로 시부야 매장으로 가 줄을 섰고 그쯤 되었을 때 이미 지쳐서 다이칸야마 매장은 가지도 못함..
그리고 내 번호표는 사실 입장 순서가 아니라, 추첨 번호표인게 핵심인데 이게 개 극혐인게
빨리온다고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고.
어떤 웹사이트(줄 근처에 QR코드가 있더라)에 입장 번호가 뜨면 알아서 자기꺼랑 비교해보고 찾아가는 방식이었음.
그지같은 방식이었음 정말.
처음 봤을 때 두 매장 다 순서가 엄청 뒤쪽에 있길래 포기하고 아 조졌다~ 하던 와중
두 매장의 번호를 거꾸로 본 걸 깨닫고 다시 보니 입장리스트에 불려있었다.
신기하다하며 또 매장에 가니. 또 줄 세움 ..
이때쯤부터 전신 슈프림맨들에 뭔가 진저리가 쳐졌음.
뭔가 질환 중 하나로 보일 정도로 전신 슈프림.
그 와중에 같이 간 형은 낙첨이었는데, 앞에서 기다리려고 하니 안보이는데서 기다리라고 꺼지라 그럼.
정말 배짱장사의 끝판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뭔가 간절하게 만드는 좋은 전략같았음.
이게 혐오감과 동시에 당첨이라고 하니 엄청난걸 이룬거 처럼 두근두근한 기분이 들었음.
입장하고 나니.. 매장에서 구경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애초에 여긴 온 새끼들은 여기서 뭘 파는지 다 알고 종업원한테 이거 이거 이거 가져다줘 하는 시스템이었음..
난 그걸 알 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 형이 부탁한 옷 하나 부탁하고 사이즈 있냐고 하니깐
가져다 주면서 '라스트 사이즈' 라고 하길래, 그럼 티셔츠도 아무것도 하나 줘 이러니깐
가져다 줌.. 그랬더니 종업원이 '후드 이즈 굳 투' 이래서...
그거도 달라고 하니깐.. 하나 사이즈 작은거 주면서 '디스 우드 비 베러' 하고 라스트 사이즈라 하더라...
이게 이쯤 되니깐 사람 마음이 웃긴게.. 감사하고 막 은인 같고.. 그랬음.
아무튼 그래서 결제하고 나오니깐..
뭐랄까..
슈프림이라는 브랜드가 장사를 진짜 잘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음.
뭔가 불친절하고 불편한 규칙들을 만들고 그걸 지키고 나서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사람들이 더 목을 매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음.
럭셔리 브랜드들의 가격 장벽과는 다른 뭔가 조금 더 근본적인 자극이라고 생각이 들었음.
아무튼 그 소동을 겪으며, 느낀 결론은 이랬음.
슈프림 또 사고 싶다.
그리고
여기저기 슈프림 입고 있는 사람들의 로고들이 보이면 혼자 생각하게 됨.
저 사람들은 이런 한심한 프로시져를 겪었거나 이걸 겪지 않으려고 크림 같은데서 큰 돈을 지불했겠지.
아무튼 그러고나면 좋든 싫든 그 사람들을 마음 속에서 분류하게 되었다.
ps)
옷의 재질은 진짜 구림. 가격이 오히려 조금 더 싼 스투시가 옷의 재질이 몇배는 더 좋음.
ps2)
전세계 10개의 매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 도쿄 시부야구에 3개가 있다. 뭐지 싶음.
ps3)
서울에 5월에 매장 오픈한다고 함.
줄 어마어마할걸로 기대.